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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 Restaurant

[용산] 트래버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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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일본에 놀러갈 때면 슈퍼에서 드립백 커피를 사오라는 부탁을 종종 받았다.

커피 선택지가 사실상 맥심 믹스커피 아니면 스타벅스 테이크 아웃 밖에 없던 시절이니 커피를 마시던 사람에게는 남다른 맛이 느껴졌을 지 모른다.

이후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 나타나고, 카누나 이디야 같은 스틱커피도 나오면서 일본산 드립백을 찾는 사람도 줄었다.

그런데 얼마전 친구가 트래버틴 드립백 커피를 선물로 주었는데 맛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방문계획을 미뤘었는데 오늘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가 보았다.

용산역에서 가깝지만 주변은 옛날 상가, 식당이 모여있는 동네다.

지금은 뜬금없는 위치지만 용산이 점점 발전되는 미래를 그려보면 나쁘지 않은 장소다.

도심지에 흔히 흉물로 방치된 주택을 개조해서 카페로 만들었다.

힙하고 잘 나가는 카페의 공통점은 뭐다? 간판이 없ㅋ음ㅋ

국내 유일의 북유럽 커피 디스트리뷰터라고 하며 본점은 덴마크 오르후스에 있다.

그런데 라 카브라는 스페인어 아닌가?

담벼락에 구멍을 뚫어 야외석처럼 만들어 놓고, 실내의 외벽은 따로 통유리로 만들었다.

나무가 심어진 곳이 좁지만 나름 정원의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좌측 꽃병 위에 매달려 있는 은빛 구체는 놀랍게도 스피커다.

스피커를 설치하면 소리가 특정 방향으로 나게 마련이라 가끔 신경이 쓰일 때가 있다.

무방향 스피커도 중앙에 놓으면 공간 활용이 아쉽고, 구석에 놓으면 결국 한쪽 방향으로 소리가 나간다.

바닥을 향해 소리를 쏘는 저 스피커는 소리가 안개처럼 깔리는 효과가 난다.

처음에는 도대체 음악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한참 찾았다.

다음에 가면 어느 회사인지 알아봐야겠다.

대문은 아예 문을 없애고 시원하게 뚫어놓았고 실내 외벽의 통유리 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다.

카페 중앙에 있는 좌석과 열일 하시는 바리스타.

가게 안쪽에도 여럿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런데 커피를 놓을 테이블이 보이지 않는다?

카페의 입구 쪽 절반은 통유리, 안쪽은 사진처럼 예전 벽에 시멘트만 간단히 덧발라 놓은 모습이다.

지붕의 뼈대를 그대로 남겨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가게 한켠에 진열된 원두, 그리고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드립백 커피도 판매하고 있다.

방문 시점에는 아쉽게도 드립커피를 맛볼 수 없어 Espressso Brew에서만 주문할 수 있었다.

화이트는 우리가 아는 라떼라고 한다.

라떼와 애플 시나몬 케이크를 주문했다.

첫인상은 라떼가 살짝 희멀건 느낌이라 밍밍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한모금 마셨는데... 아니, 이게 무슨 맛이지?

일단 너무 맛있다. 그리고 기존에 내가 알던 커피 범주를 벗어난 다른 맛이 난다.

상큼하면서도 기분 좋은 시큼한 맛이 그릭 요거트 같은 느낌을 준다.

라떼는 우유 맛이 너무 강하면 니글거리고, 커피 맛이 너무 강하면 둔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라떼가 맛있는 집은 커피와 우유의 밸런스가 절묘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라떼는 밸런스가 아니라 아예 커피와 우유가 합쳐져 새로운 음료가 된 느낌이다.

분명히 커피 맛도 느껴지고 우유 맛도 느껴지는데 기존 라떼와는 다르다.

이게 북유럽의 맛인가?

함께 나온 애플 시나몬 케이크도 인생 케이크다.

텁텁함 제로에 케이크가 이렇게 상큼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고 라떼와 너무 잘 어울린다.

이런 카페에서 커피 2잔씩 비우면서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얼마나 힐링이 될까.

요즘 트렌드를 따라가는 분위기 좋지만 불편한 좌석이 너무 아쉬울 뿐이다.

언젠가 누군가와 함께 찾아오면 앉고 싶은 자리.

더 따뜻해지면 작은 봄꽃이, 가을에는 가을꽃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편인데, 일부러 찾아온 가게가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주었다.

재방문을 기약하며 아쉽지만 카페 문을 나섰다.

다른 친구에게 선물주기 위해 구입한 드립백과 함께.

Fin.